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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과 심리치료 Attachment and Psychotherapy

Updated: Dec 29, 2022


“나는 애당초 부모로부터 따뜻함도 사랑도 받지 못하고 컸는데, 어떻게 안정감을 가질 수 있고 변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심리치료를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영민씨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10대부터 깊은 우울과 분노, 공포와 불안장애를 겪으면서 현재 3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늘 불안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강박적으로 지내던 영민씨가 ‘따뜻함’, ‘안정감’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에게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하느냐고 상상하기 시작하고 묻는 것 자체가 제게는 하나의 놀라움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이 상처에서 회복되는지, 심리치료는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내담자--치료자의 관계는 심리적, 상징적 측면에서 아기와 엄마의 관계와 닮아 있습니다. 먼저 아기와 엄마, 혹은 양육자와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아기가 양육자와 갖는 애착이 아기의 신체적, 정서적 생존과 발달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작용합니다.

르네 스피츠 Rene Spitz라는 정신분석가는 “Hospitalism”이라는 책에서 세계 2차대전 속에서 출생 후 양육원에 남겨진 아이들에 대해 조사 연구한 결과를 서술합니다. 그는 아기들이 신체적으로는 돌봄을 받아도 정서적으로 지속적인 양육이 결여될 경우 발달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조사하였습니다. 아기들은 거의 대부분 우울해지고 의기소침해지며 병약해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생후 2년이 지나면서 이 아이들의 1/3은 사망하였고 살아남은 아이들도 4년차에 이르러서 제대로 앉거나 서고 걷고 말하는 아이가 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르네 스피츠는 사랑하는 양육자의 손길의 부재가 아이의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엄마나 친밀한 양육자와의 신체적 접촉, 애정 어린 눈빛과, 말없이도 오고 가는 정서적인 소통 속에서 안정감을 누리면서 서서히 어떠한 감정이든 경험하고 소화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만약 아이가 이러한 일차적이고 비언어적인 감정소통에서 기본적 신뢰와 안정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로 강력한 감정 경험들을 하게 되면 이를 감당하고 소화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의식에서 소외되어 억압되거나 해리된 채로 아이들의 정신에 지속적으로 무의식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즉, 아이들의 성장과 인격발달에 우울, 불안, 강박, 자기애적narcissistic 공허와 결핍 등의 양상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낳고 길러 준,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누리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을 어떻게 경험하고 상처에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하는 질문은 무척 타당합니다. 우리가 엄마나 혹은 나를 키워준 사람과 애착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불안정하거나 버림받는 경험 속에 컸을지라도 성장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른 여러 대상들—선생님, 친구, 연인 등—과의 관계에서 신뢰와 사랑을 경험하고 결핍과 상처를 보상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다만 그 결핍과 상처의 정도가 클 경우, 우리는 일반적인 인간 관계에서 애착과 신뢰를 회복하는 경험보다는 생애 초기 양육자와의 경험을 재연하고 자신의 내면적 불신을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심리치료로 맺어진 관계에서는 어떻게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심리치료라는 작업은 내담자와 치료자 간에 고도의 집중과 정서적 몰입을 요하는 것입니다. 치료자는 내담자와 심리적, 물리적 공간안에 함께 존재하면서 내담자의 눈을 마주치고 반응하며, 비언어적인 태도와 행동을 읽고, 또 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치료자는 내담자의 여러 감정들을 자신의 마음에 담아 이해하고 소화하면서 내담자와 나눕니다. 이러한 과정은 내담자와 치료자 간에 친밀함, 애착, 신뢰를 형성하게 합니다. 그 관계의 토대 위에서 내담자는 서서히 자신의 고통스럽고 잊어야 했던 경험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기억하지 못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 생각, 충동 들이 의식에 되살아나고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치료자와의 안전한 관계 속에서 이런 내용들을 다시 경험하면서 감정을 풀어내고 견디며 조절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곧 고통스러웠던 경험들에 대해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과정과 함께 합니다. 우리에게 고통과 상처가 있을지라도 그 경험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태도가 우리 삶과 관계성의 질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한 영민씨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이전부터 간간히 어릴 적 너무나 불안하고 무서웠던 순간들을 생생한 감정과 함께 기억하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과거 몇 년간의 심리치료 속에서는 기억이 늘 단편적이고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죽일 듯 늘 화내고 심하게 싸워서 무서웠다고 말은 하지만, 영민씨에게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리면서 얼마나 무서웠냐고 물어보면 잘 기억이 안 나거나 모르겠다는 대답이 줄곧 돌아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감정도, 기억도 보다 살아나고 과거 경험의 퍼즐이 맞추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제게 물었던 것입니다. 따뜻함, 사랑, 안정감을 느끼며 사는 삶이 가능하냐고 말입니다. 영민씨가 그런 감정을 조금씩 경험할 수 있게 되어서 충분히 더 상상하는 것도 가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영민씨와의 심리치료 작업은 영민씨의 감정이 더 살아나면서 예전보다 더 깊어졌지만 오히려 힘들기도 합니다. 영민씨에게 무섭고 우울하며 극도로 불안했던 날들의 기억이 감정과 함께 살아나니 그 감정들을 치료자로서 저도 강하게 느끼게 되어 이를 소화하고 영민씨와 다루는데 심적 에너지가 많이 드는 탓입니다. 하지만 이를 기꺼이 감당하려 하는 치료자와 자신의 고통을 기꺼이 보여주는 내담자 사이의 애착관계는 내담자가 변화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Dr. SUJIN RHI

한의사(한국(한의 신경정신과), WA), 미국 공인 정신분석가(NCPsyA)

drsue.net

720.207.8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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